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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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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씀본문 | 사도행전 15:36∼41

오늘 본문은 그토록 모범적이었던 안디옥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두 지도자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심히 다투고 결국은 갈라섰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  진리  ) 문제 아닌 것을 가지고 (  나만  ) 옳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인들과 이방인들에 대한 할례 문제로 다툴 때 그들은 하나가 되어 이 문제를 잘 해결했습니다. 그 문제는 구원과 관계된 문제였습니다. 그 때 바울과 바나바는 완전히 하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둘 사이에서 왜 이처럼 큰 다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2차 전도여행을 가면서 “마가라는 한 청년을 데리고 갈 것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의견이 갈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을 두고 “내가 옳다”고만 주장할 때, 결국 교인끼리 다투고 갈라서게 됩니다. 아무리 자신이 백번 옳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 문제에 속한 것이 아닐 때에는, “나만 옳다”고 하는 그 생각부터 양보하고 버림으로써, 형제를 되찾고 교우를 다시 끌어안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  자신 )도 용납받을 수 없지만 ( 용납  )받은 존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의 고집이 너무 셉니다. 나중에 바울이 죽기 전,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가를 가장 중요한 동역자로 생각하고, 보고 싶어하였던 것을 보면, 그 당시 바울이 얼마나 편협하고 감정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마가를 다시 데려가자는 바나바가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바울 자신도 이전에는 도무지 용납받을 수 없었을 때 용납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솔직히 바울은 마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용납받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마가를 반대하였던 바울은 그 자신이 마가보다 훨씬 더 용납하기 어려웠던 사람이었음을 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자신도 도무지 용납 받을 수 없었는데 용납받은 존재임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은 (  협력  )하여 결국 당신의 ( 선 )을 이루십니다.
본문에 기록된 바울과 바나바의 이야기는 “그렇게 다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결국은 하나가 되었더라”가 아니라, 결론은 “심히 다투어서 피차 갈라섰다” 입니다. 하지만 이런 큰 어려움을 겪은 이후 다툼의 이야기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부터 바나바의 이름은 사도행전에서 사라져 버리고, 바울의 선교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바울은 선교사역을 아주 잘 감당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들이 제아무리 잘못한다고 할지라도 당신의 계획에 어떤 중대한 차질이나 손해를 보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후 바울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오히려 당신의 구속사가 더 효과적으로 진전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따로 가게 됨으로써 전도팀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선교도 성공적이었지만 그토록 그가 반대하였던 마가도 하나님 나라와 특히 바울 자신에게까지 유익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