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대한 과한 욕심을 버립시다!
성령강림절을 맞아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오늘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1. ( 성령님 )의 ( 인도하심 )을 따라야 합니다.
그동안 성령충만을 외치며 부흥성장한 한국의 세계적인 초대형 교회들을 보면 “과연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오히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는 말씀이 더 실감납니다. 이에 대해 오늘 본문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뜻은 좋은데 열매가 없는 경우는, 십중팔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한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좋은 뜻이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주님 안에 거하는 훈련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이 기본되어야 합니다.
2. 육신의 ( 욕망 )을 ( 다스려야 )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무리 성령 충만을 구하였어도 육신의 욕망을 다스려놓지 않은 상태라면, “성령의 인도하심도, 성령 충만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육신의 욕망을 그대로 살려둔 채로 성령 충만을 구했다면, 그 구함은 더 탐욕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힘과 이 욕망을 과소평가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항상 “육신이라고 하는 사납고 통제가 안되는 존재와 함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 무너지는 것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간해선 잘 통제되지 않는 육신을 가지고 있음을 ‘명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육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오히려 감사한 일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서 우리는 더욱 주님을 갈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 일상 생활 )에서 성령님과 ( 동행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많은 사명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사역 현장이 힘든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바쁜 사역 현장보다 매일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이 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훈련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운동하기에 오히려 병과 통증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의 자세가 틀어진 경우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일을 감당하기 전에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과 사역이 지치고 메마르게 되는 이유를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몸의 자세를 바로 잡듯이, 매일 매일 바른 삶을 사는 것부터 훈련합시다!
1. ( 성령님 )의 ( 인도하심 )을 따라야 합니다.
그동안 성령충만을 외치며 부흥성장한 한국의 세계적인 초대형 교회들을 보면 “과연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오히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는 말씀이 더 실감납니다. 이에 대해 오늘 본문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뜻은 좋은데 열매가 없는 경우는, 십중팔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한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좋은 뜻이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주님 안에 거하는 훈련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이 기본되어야 합니다.
2. 육신의 ( 욕망 )을 ( 다스려야 )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무리 성령 충만을 구하였어도 육신의 욕망을 다스려놓지 않은 상태라면, “성령의 인도하심도, 성령 충만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육신의 욕망을 그대로 살려둔 채로 성령 충만을 구했다면, 그 구함은 더 탐욕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힘과 이 욕망을 과소평가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항상 “육신이라고 하는 사납고 통제가 안되는 존재와 함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 무너지는 것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간해선 잘 통제되지 않는 육신을 가지고 있음을 ‘명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육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오히려 감사한 일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서 우리는 더욱 주님을 갈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 일상 생활 )에서 성령님과 ( 동행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많은 사명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사역 현장이 힘든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바쁜 사역 현장보다 매일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이 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훈련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운동하기에 오히려 병과 통증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의 자세가 틀어진 경우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일을 감당하기 전에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과 사역이 지치고 메마르게 되는 이유를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몸의 자세를 바로 잡듯이, 매일 매일 바른 삶을 사는 것부터 훈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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