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발 붙일 만한 땅이 없어도
한국교회는 지난 2천년 역사 가운데 가장 급성장한 세계 기독교사에 빛나는 교회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시기입니다.
1. 한국교회는 지금 심각한 ( 위기 )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만, 이미 한국교회는 상당수 교인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관심거리도 아닙니다. 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인 사도행전 7장은, 초대교회의 7집사 가운데 한 분인 스데반 집사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행한 설교의 내용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본래 살던 곳을 떠나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가나안으로 이주했던 것은, 아브라함의 자신의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신 분은 하나님이시건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발붙일 만큼의 땅 한 평조차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2. 믿음은 ( 지금 )이 아니라 영원한 ( 미래 )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발붙일 땅도 없는 그 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절망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약속을 황당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인 즉은,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영원과 접목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곧 이 땅의 나라를 사모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 곧 “영원한 천국을 사모했다”(히11:16)고 하였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뭔가 후손들에게 이렇다 할 내세울 증거나 그 어떤 유산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있다면 겨우 묘지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갔다”고 하는 것은, “그들도 아브라함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똑같은 믿음, 아브라함과 똑같은 비전을 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믿고 나간 것은 이 땅의 세상적인 상속권을 믿고 나간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것입니다.
3. 다음 세대에게 믿음의 ( 비전 )을 ( 유산 )으로 물려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건물이나, 재정이나, 어떤 외형적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우리도 값진 유산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보물을 남겨주라는 말인데 그 보물은 재산이 아니라, 바로 정신입니다. 우리 신앙 선배들의 도전정신, 희생정신, 영혼사랑, 민족사랑, 교회를 향한 헌신 등. 우리가 아무리 이 건물을 잘 물려준다고 하여도 언젠가는 다 무너져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것,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위대한 업적과 대다한 사업을 남겨준다고 하여도, 우리의 인격을 통하여 예수님의 향기와 예수님의 사랑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의 유산도 신앙의 상속도 아닌 것입니다. 물려줄 유산이 있어야 하는데, 재물이 없어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믿음, 그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1. 한국교회는 지금 심각한 ( 위기 )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만, 이미 한국교회는 상당수 교인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관심거리도 아닙니다. 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인 사도행전 7장은, 초대교회의 7집사 가운데 한 분인 스데반 집사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행한 설교의 내용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본래 살던 곳을 떠나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가나안으로 이주했던 것은, 아브라함의 자신의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신 분은 하나님이시건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발붙일 만큼의 땅 한 평조차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2. 믿음은 ( 지금 )이 아니라 영원한 ( 미래 )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발붙일 땅도 없는 그 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절망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약속을 황당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인 즉은,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영원과 접목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곧 이 땅의 나라를 사모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 곧 “영원한 천국을 사모했다”(히11:16)고 하였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뭔가 후손들에게 이렇다 할 내세울 증거나 그 어떤 유산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있다면 겨우 묘지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갔다”고 하는 것은, “그들도 아브라함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똑같은 믿음, 아브라함과 똑같은 비전을 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믿고 나간 것은 이 땅의 세상적인 상속권을 믿고 나간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것입니다.
3. 다음 세대에게 믿음의 ( 비전 )을 ( 유산 )으로 물려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건물이나, 재정이나, 어떤 외형적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우리도 값진 유산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보물을 남겨주라는 말인데 그 보물은 재산이 아니라, 바로 정신입니다. 우리 신앙 선배들의 도전정신, 희생정신, 영혼사랑, 민족사랑, 교회를 향한 헌신 등. 우리가 아무리 이 건물을 잘 물려준다고 하여도 언젠가는 다 무너져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것,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위대한 업적과 대다한 사업을 남겨준다고 하여도, 우리의 인격을 통하여 예수님의 향기와 예수님의 사랑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의 유산도 신앙의 상속도 아닌 것입니다. 물려줄 유산이 있어야 하는데, 재물이 없어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믿음, 그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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