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마태복음 1:18∼25)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와 더불어 그 탄생의 의미를 기록하며, 오늘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남자의 씨가 아닌 성령으로 잉태된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당시 약혼한 상태였던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조용히 끊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오기를 분노하거나 불쾌해한 것이 아니라 무서워했습니다. 이는 요셉이 이미 마리아로부터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들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요셉의 고민은 부정이 아니라, “메시아의 육신적 아버지가 되는 이 전무후무한 일에 인간인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경건한 고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또한 이를 믿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왔으며, 마리아를 통해 나신 분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서 (구원)할 자로서 오셨습니다.
천사는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으로,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을 명시합니다.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죄의 오염이 없으신 분이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만이 죄 없으신 분이며, 오직 그분의 피 흘림을 통해서만 죄 사함이 가능합니다. 참된 구원은 죄를 이기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죄의 영향력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이 되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죄의 잔당들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구약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며 천사가 “아들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선포합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임마누엘이 하나님의 임재 약속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 약속이 성육신하여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현실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 뛰어 들어오신 것입니다. 요셉에게 임마누엘은 딜레마의 해결책이 아닌, 함께 하는 진리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삶의 고통과 불안 속에서도 임마누엘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고통스러워 홀로 걸을 수 없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안고 걸었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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