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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9년 04월 07일자 칼럼] 죄짓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

죄짓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요 한국 교회 전체를 덮고 있는 위기입니다. 진실로 심각한 것은 우리가 지은 죄가 아니라 우리의 뻔뻔함입니다.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교회에 나와 봉사할 수 있습니다.
목회하면서 점차 두려운 것은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설교  못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성결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설교도, 심방도, 선교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짓고도 얼마든지 은혜롭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큰 이적을 행할지라도 불법을 행한다면 주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모범적으로 보이는 사람 중에도 마음이 완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임종을 맞이할 때 가서야 양심이 깨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도 양심이 깨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이것을 주님 앞에 가서야 깨닫게 된다면 이보다 두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께서만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하여 성인이라 추대받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사악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를 많이 지었느냐 적게 지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심령이 성령으로 깨어났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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