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 막히는 더위 속 상념(想念) ’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이 나병 확진을 받고 소록도를 향해 가던 자신의 이야기를 쓴 시 ‘全羅道 길’의 첫 대목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붉은 황톳길은 아득하고 암담한 시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되기만 하고, 숨 막히는 더위는 ‘날씨가 덥다’는 뜻도 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던질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전달합니다. 게다가 낯선 사람들은 모두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천형(天刑)을 앓는 자라고 하여 모두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처지의 문둥이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문득 떠오른 시구(詩句)이지만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우리와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인격마저 존중하지 않는 배타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 또한 마음과 정신이 문드러진 문둥이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우리의 자화상들이 여전히 주변에서 비춰지는 것에 마음이 영 편치 않습니다. 그나마 신경이 쓰이고 통증을 느낀다면 감각이 완전히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다는 반증일까요? “'아프냐? 나도 아프다!” 어느 TV드라마에 나왔던 이 대사가 오늘 우리의 공감 지수를 묻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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