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외 아픔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며 생각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치와 사회에 대한 것이든지, 신앙적인 질문이든지 문제를 드러내는 질문들은 수없이 많아도, 해답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성급한 마음은 분노를 향하고 맙니다. 질문하기는 쉽지만 대답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만약 누가 길에 차를 세우고 “부산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질문은 정말 간단하지만 대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 자세히 부산가는 과정을 설명하다 보면, 질문 한 사람은 중간에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주님께 수많은 질문들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언제나 간단명료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당황하게 됩니다. 한 때 저는 정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고 그것이 목사다운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어떤 문제에 섣불리 답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론 정답이라고 제시한 것이 오히려 기독교나 주님의 뜻을 왜곡할 때가 많았고 오히려 침묵이 답일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은 답을 모르는 상황에도 계속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인격이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선명한 답이 없는 가운데도 현재 함께 하시는 주님을 더욱 바라보고 한걸음씩 나아가는 태도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런 삶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신앙에 대하여 회의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을 교리나 지식으로만 여겼지, 인격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순종하는 훈련을 외면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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